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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LORY OF JESUS ON THE CROS

by Phillip Brown (USA)   08/05/2023   John 19:16~42

Question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영광

요한복음 19:16-42

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무언가를 끝내 본 적이 있습니까?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의 기쁨과 만족을 경험해본 적 있습니까?

무언가를 끝내서 다시 해도 되지 않아도 되는 그 기쁨을 아십니까?

얼마나 좋은 느낌입니까!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함성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이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을 믿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 우리는 사도 요한이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할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을 믿고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도록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영광, 그분이 당신을 위해 성취하신 일을 보고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 1 장 : 그리스도의 십자가, 16-27절

어제 Eberhard Gross 목자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이 되었음을 배웠습니다.

영원하신 창조주이자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 가운데 거하시며 육신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영광스러운 일을 많이 하셨지만

그의 영광의 시간은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가장 놀랍고 가장 강렬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실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의 십자가 형을 같이 봅시다.

16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겼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고발할 근거를 찾지못해 풀어 주려고 했지만 적대적인 유대인 군중은 빌라도에게 계속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는 그들의 요청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는 가장 놀라운 질문을 했습니다.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는가?”

왕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도둑, 강도, 반란군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왕들은 영예를 얻고 섬김을 받고 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왕 되신 예수님께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군인들이 예수님을 맡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히브리 말로 골고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가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군인들에 의해 중한 범죄자처럼 끌려가셨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 예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랜 심문과 채찍질로 고초를 당하셨고 가시 면류관에 찔리고 얼굴에 뺨 맞음을 당하셨습니다. (19:1-3)

그런 와중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의 십자가를 직접 지고 가셨다고 기록합니다.

나무 십자가의 무게는 50-140kg 정도 나간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지극히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는 그것을 골고다까지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쌔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요한은 마치 범죄 현장을 보고하는 사람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을 사실대로 기록합니다.

그가 사실대로 기록한 것은 우리가 사실대로 믿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히브리어로 골고다라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로마 군인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요한은 평생 동안 그 장면을 결코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요한은 의로우신 예수님과 함께 하며 놀라운 기적들을 직접 보고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시고 그의 모든 연약함을 감당해주신 분이었습니다.

지금 그의 눈 앞에서 예수님께서 정죄받은 죄인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형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십자가 처형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는 몸의 가장 연약한 부분인 손과 발에 긴 쇠못이 박히는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 있는 동안 그의 몸은 근육이 다 찢기고 뼈가 모두 어그러질 정도로 늘어졌습니다. (시 22:14)

특히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숨을 쉬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못 박힌 발에 모든 체중을 싣고 일어나야만 했는데 그 고통은 말로 할수 없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이 견디기 힘들면 다시 그의 체중을 손과 손목에 실어야 했는데 그러는 동안은 숨을 쉴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긴 시간 동안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수백 년 전에 시편 기자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이사야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이사야 52:14)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형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 복음서 모두 19절에 기록된 한 가지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모두 일관되게 기록하였습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에게는 처형 이유를 설명하는 패를 십자가에 붙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한 행위들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은 결백하고 죄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빌라도에게 예수님께서 그가 누구인가인 정체성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통찰력을 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 표지판은 히브리어, 라틴어 및 그리스어의 세 가지 언어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언어는 당시의 전 세계, 즉 모든 인류를 대표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보면 불의에 의한 슬픈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의 시각으로 보면 결코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낸 것은 빌라도도, 유대인 폭도들도, 혹은 단지 인류의 악만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셨고 모든 예언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번 말씀에서 세번이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밀하고 아주 작은 부분까지 영광스러운 뜻을 이루셨습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은 군인들에 의해 발가 벗겨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취한 군인들은 각각 한 몫씩 네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솔기 없이 만들어진 속옷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찢지 않고 그것을 얻을 사람을 제비뽑기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너무나 치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모자라 치욕적으로 그의 모든 옷들은 벗겨졌고 네명의 악한 군인들이 그의 속옷을 두고 제비뽑기 하며 노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 순간에 그는 얼마나 비참하게 느껴졌을까요.

그의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박힌 채 몸을 가리거나 군인들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았습니다.

이 끔찍한 장면 속에서도 사도 요한은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그리하여 군인들이 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요한은 군인들이 거의 1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군인들이 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악행은 단지 그들의 임의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님께 일어나도록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모든 존엄성과 모든 옷을 잃은 그는 이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는 슬픔을 경험합니다.

십자가 가까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포함한 4명의 여신도들과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도라고 밝힌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귀한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까지 따라가기까지 한 예수님께 가장 충성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지켜보며 당한 내면의 고통을 단지 상상만 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위로하십니다.

어머니에게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보셨고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시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통해 우리는 그의 영광을 봅니다.

십자가 형을 생각할 때 그것은 매우 잔인하고 끔찍합니다.

너무 잔혹해서 이것은 처벌수단으로 금지된지 오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관철하시고 통제하신다면 왜 그는 그의 독생자를 보내서 의도적으로 이렇게 고난을 당하게 하고 죽게 했을까요?

예수님이 왜 오셨고 어떤 목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죄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마 1:21)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벧전 3: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고전 15:3).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롬 3:25).

그는 우리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요 1:29)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보내신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로마인들은 노예, 반란군, 강도 등을 처벌하기 위해 십자가형을 사용했습니다.

처벌은 가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셨을 때 그는 죄를 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쏟아 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 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는 얼마나 중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영적인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으셨습니다.

고통 중에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이 아는 가장 소중한 것, 즉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잠시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신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외면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얼마나 끔찍하고 하나님은 얼마나 거룩하신지요!

종종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우리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합니다.

선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서 망할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정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분과 함께 같은 배에 앉았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악과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면 감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도록 예수님을 우리 대신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가 왜 그렇게 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희생 하도록 하셨습니까?

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신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만큼 사랑도 많으십니다.

독생자를 내어 주셨을 때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드러내신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셨다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요!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일은 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리석은 일은 그 사랑을 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복을 주셔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깨달을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제 2 장 (다 이루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던 것 한 가지를 기록합니다.

3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은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신포도주를 받으신 직후, 그리고 머리를 숙이시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간절히 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말을 한다면 온전한 평안을 누리고 죽어서도 여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그는 이 말을 너무나 간절히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말을 끝내고 직후에 머리를 숙이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끝내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이유가 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을 강조합니다.

그의 일생동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했고 아버지가 주신 일을 마치기 위해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우리 죄를 위한 대속물로 바치기 위해 사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외로움과 종교자도자들의 핍박과 제자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의 임무 완성을 염두에 두고 계속하여 나아가셨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감당하기 위해 단호하게 예루살렘으로 진군했습니다.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 그의 우편에 앉으셨으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승리의 함성이었습니다!

첫 번째 아담과 달리 그는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죄를 정복했습니다.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사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아브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백성이 아닌 백성을 그의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는 호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시리라고 이사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후손을 통해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겠다는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유다의 사자가 승리했습니다 (계 5:5)!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외쳤을 때 그것은 단지 자신의 성취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이것을 알기를 갈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끝내신 이 일을 받아들이고 믿을 때 우리는 가장 복된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리스어로 “다 이루었다”는 또한 완전히 지불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부채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비즈니스 문서나 영수증에 “다 이루었다”라고 종종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죄의 댓가가 완전히 지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정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감당하셨고 다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가져가셨습니다.

육체적인 고통과 굴욕을 당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시면서 까지 말입니다.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의 계획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추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더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고통을 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죄의 값을 단번에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켰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성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의 진노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위해 영광스러운 것 이상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22절은 말씀합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거룩하지 못하고 얼마나 흠이 많습니까!

우리는 매일매일 얼마나 잘못을 많이 하고 또 그때문에 책망 받아 마땅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실때,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자로 세우실수 있습니다.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완벽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우리에게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떠나신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로 가셨기 때문에 그들은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아버지의 집에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비록 여러분들이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을 생각할때 그것은 일시적인 괴로움일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보장해 주신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그것은 80% 확률로 20%는 운에 맡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을 믿는 믿음 없이는 결코 우리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100% 다 이루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모든 것을 완성하셨고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온전히 감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100%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100% 확신할 때 모든 의심, 모든 두려움, 내일에 대한 모든 염려, 모든 죄책감과 정죄감이 영원히 사라질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천국으로 갈때까지 자유롭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쁨과 평안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구원을 보장했습니까?

당신의 성취였습니까?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분이 모두 이루셨습니다. . 그분이 모두 지불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모두 이루셨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분은 자기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가 언제 이것을 했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

우리가 죄와 반역의 삶에 빠져 있을 때 그분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격을 받을 만한 일을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을 때 그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소식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는 해냈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할 때 우리도 그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적인 상황이 이상적이지 않아도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정체성 때문에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거저 받은 것처럼 우리도 거저 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은혜를 붙잡을 때 우리 삶의 모든 문제는 그분 안에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중풍병자를 구원하시고 치유하셨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그 중풍병자와 같았습니다.

저는 정말 선하게 살고 싶었고 제가 해야 할 선을 알고 있었지만 선한 일을 할 힘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삶에 대한 운명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언어습관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수년 동안 심한 말더듬을 겪었습니다.

이 때문에 누구에게도 명확하게 말을 할수 없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가복음 5장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의 은혜가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전혀 쓸모없는 귀신 들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신 예수님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럴만한 가치가 없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꺼이 구원해 주셨던 그 비참한 죄인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선한일을 한적이 없었습니다.

제 안에 선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저의 죄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저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느새 저에게 참된 영광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자신을 고통받는 자가 아니라 축복받은 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선하심을 보게 되었을 때, 스스로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무거운 짐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31절을 인생 핵심요절로 잡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연약함들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나약하고 미련하고 아무것도 없는 저를 택하셔서 당신의 영광과 선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제가 가장 싫어했던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하나님은 저에게, 그렇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선하심과 영광에 대해 증거하기 위해 입을 열어 말을 하게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워싱턴 UBF 지부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를 준비하기 전에 저는 두 가지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하나는 제가 이 일을 감당할 만한 재질이 못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가 아무리 해도 결코 충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왜 제가 이 일을 하도록 부르셨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 다 이루었다.

나는 너의 재능이나 능력이나 선함 때문에 너를 부른 것이 아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라고 너를 불렀다.

내가 벌써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러니 충분하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쁨과 영혼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과정 어디에 있든지, 선교의 삶이 어디에 있든지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은 충분하십니다! 당신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그분안에서 해답을 찾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후 머리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완수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때가 왔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쏟으시고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계획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자신과 화목케 하시기 위해 그분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 요한은 여러분이 이것을 믿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 모든 권능과 사랑의 행위를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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